참외이야기 농장전경을 담아보았습니다.

성주참외를 생각하면 참외비닐하우스가 생각나지요

참외비닐하우스가 얼마나 많은지 끝이 안보입니다..

겨울참외의 원조가 우리 도흥참외마을이니까 일찍부터 참외재배가 이루어졌습니다, 

낙동강이 옆에끼고있어 비옥한토양과 풍부한 물과 넓은 들판을 자랑하고있지요...

 성주군 선남면 도흥리 636번지 주위에서 참외를 재배하고 있지요..

집사람과같이  참외농사를 짓은지가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참외농사를하면서  웃기도하고 짜증을 내기도하면서

그렇게 옥신각신하면서 잘 살고있습니다..

오늘도 짧은 하루가 지나갑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할려고하는데  농사라는게 마음대로 잘 안되네요.....

밤이 지나면 또 태양이 뜨겠지요....

참외하우스가 끝이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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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성주참외이야기 참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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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서구 2012.04.02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외농사짓기 좋은곳에 농장이 있네요..



겨울 참외의 원조..
겨울참외외의 원조는  성주에서도 우리도흥리에서 전국에서 가장먼저 재배를 하였다.
지금 법타사 주지스님으로 계시는 노신환님이 1977년에  건축용자제(대서리)를  6m와 120cm를연결해서 지금의 하우스모양으로 설치를하고
비닐은 수입비닐(일산)PVC비닐과 국산비닐을 2중으로 씌우고  대나무를 잘라서 터널을만들고 그위에 터널비닐을 씌웠다고 한다.
지금은 성능이 좋은 보온덥게가 있었지만 그때에는 집으로 역은 거적을사용하여서 보온을하였다고 한다.
어려운점이 너무많았다고한다. 참외와 박을 접목하였는데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다보니 기술과 경험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고 실패도 하였다고 한다.
참외담을 박스가없어서 코오롱(실담는박스)에서나오는 4*8박스를 사용하였는데 무개가 약30-40kg이었다고한다
참외를 출하때도 서울에 바로가는 화물차가 없어서 참외를 화물차로 김천고속버스터미널까지옮기고 다시 고속버스짐칸으로 서울까지 옮기고 다시용달로 개인청과에서 팔았다고한다.
1978년 1월20일 첫출하를 하였는데  참외 한박스에 11만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당시 땅1평에 2000~3000원에 거래되었다고하니 상상이 가지가 않는다..
1978년 구자춘씨가 도지사를 할때에 하루에 전국에서 관광차로 2-3대가 현장견학을 오기도 하였고. KBS, MBC, TBC.에서 전국방송을 타기도하였고.
1979년에는 경상북도 도청벽보에 경북의 자랑이라고 벽보에 노신환씨의 사진이 붙기도 하였다..
전만원(용암유서리), 김창원(문명)님이 먼저 대나무로 하우스를 만들어 로얄을 재배하였으나 지금처럼 겨울참외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후로 2년뒤에는 동네에서도 박성환, 노점태, 노근초, 노상필씨등이 기술을배워서 시작하였다고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씀이
나만의 참외를 만들고 또한 공부도 많이하고, 무조건 부지런해야지 되고, 토론도 많이하고등등......
도흥리에 태어난것이 참으로 뿌듯하였다...
Posted by 성주참외이야기 참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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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외사랑 2011.01.31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던해 첮출하가 되었네요..ㅋㅋ
    내 나이랑 도흥참외랑 나이가 같네요..
    튼튼한 밑거름으로 튼튼한 참외가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도흥동에 태어난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도흥동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