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참외하우스에는 써리가 뿌였게 내렸고

저멀리 낙동강에는 연무가 끼여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올해도 가족들의 건강과 자식농사를위해 .....


희망이란 주어지는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것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에 사랑이들어오면 희망이 탄생하고

그 희망은 행복을 만들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귀하의 가정에 항상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고 소원성취하길 ~~


해마다 맞이하는 새해지만

마음가짐은 항상 새롭습니다..

올한해 희망이라는 도화지에

온유함,겸손,슬기를 수놓고 싶습니다...


.....

Posted by 성주참외이야기 참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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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본재 2012.01.05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망은 주어지는게 아니고
    만들어간다란 말 정말 멋진
    문구같습니다
    우리모두 잘 만들어 나가요

  2. 구본재 2012.01.05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망은 주어지는게 아니고
    만들어간다란 말 정말 멋진
    문구같습니다
    우리모두 잘 만들어 나가요



겨울 참외의 원조..
겨울참외외의 원조는  성주에서도 우리도흥리에서 전국에서 가장먼저 재배를 하였다.
지금 법타사 주지스님으로 계시는 노신환님이 1977년에  건축용자제(대서리)를  6m와 120cm를연결해서 지금의 하우스모양으로 설치를하고
비닐은 수입비닐(일산)PVC비닐과 국산비닐을 2중으로 씌우고  대나무를 잘라서 터널을만들고 그위에 터널비닐을 씌웠다고 한다.
지금은 성능이 좋은 보온덥게가 있었지만 그때에는 집으로 역은 거적을사용하여서 보온을하였다고 한다.
어려운점이 너무많았다고한다. 참외와 박을 접목하였는데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다보니 기술과 경험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고 실패도 하였다고 한다.
참외담을 박스가없어서 코오롱(실담는박스)에서나오는 4*8박스를 사용하였는데 무개가 약30-40kg이었다고한다
참외를 출하때도 서울에 바로가는 화물차가 없어서 참외를 화물차로 김천고속버스터미널까지옮기고 다시 고속버스짐칸으로 서울까지 옮기고 다시용달로 개인청과에서 팔았다고한다.
1978년 1월20일 첫출하를 하였는데  참외 한박스에 11만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당시 땅1평에 2000~3000원에 거래되었다고하니 상상이 가지가 않는다..
1978년 구자춘씨가 도지사를 할때에 하루에 전국에서 관광차로 2-3대가 현장견학을 오기도 하였고. KBS, MBC, TBC.에서 전국방송을 타기도하였고.
1979년에는 경상북도 도청벽보에 경북의 자랑이라고 벽보에 노신환씨의 사진이 붙기도 하였다..
전만원(용암유서리), 김창원(문명)님이 먼저 대나무로 하우스를 만들어 로얄을 재배하였으나 지금처럼 겨울참외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후로 2년뒤에는 동네에서도 박성환, 노점태, 노근초, 노상필씨등이 기술을배워서 시작하였다고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씀이
나만의 참외를 만들고 또한 공부도 많이하고, 무조건 부지런해야지 되고, 토론도 많이하고등등......
도흥리에 태어난것이 참으로 뿌듯하였다...
Posted by 성주참외이야기 참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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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외사랑 2011.01.31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던해 첮출하가 되었네요..ㅋㅋ
    내 나이랑 도흥참외랑 나이가 같네요..
    튼튼한 밑거름으로 튼튼한 참외가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도흥동에 태어난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도흥동 화이팅..